지금의 시대는 건강한 교회를 많이 생각하고 소망하게 되는 때입니다.  많은 이들이 건강한 교회를 사모하고 소망하는 이유는 많은 교회들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반증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건강한 교회"는 여러가지로 정의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설교가 좋은 교회를 건강한 교회라 생각합니다.  어떤 이들은 여러가지 유익한 프로그램이 많은 교회를 좋은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단기선교를 많이 보내는 교회를 좋은 교회로, 또 사회참여를 많이 하는 교회를 좋은 교회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신학적인 관점에 따라 건강한 교회의 정의가 조금씩 차이가 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각 교회의 사정과 주어진 은사에 따라 약간씩 다른 사역을 더 중요시 하고 열심히 하는 것은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건강하지 않은 교회들을 보면 나타나는 현상이 거의 똑같습니다.  다툼이 나고,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사람의 영광을 추구하고, 예배의 장소가 싸움터로 바뀌고, 개인의 정치적인 (때로는 경제적인) 욕심이 교회의 정책을 흔들고, 교회가 갈라지고, 많은 교인들이 상처를 입게됩니다.  그런데 이런 심각한 일들이 일어나기 전에 꼭 먼저 일어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쉽(gossip)과 루머(rumor)입니다.  다른 타락한 욕망에 비해서 가쉽과 루머는 많은 이들이 크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마 그것은 우리 나라의 문화가 가쉽과 루머에 크게 관대한 편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 두가지 현상을 매우 심각하게 다룹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를 이끌었던 지혜자는 이 두가지 악의 파괴력이 얼마나 큰지를 잘 알고 있었고 가쉽과 루머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숯불 위에 숯을 더하는 것과 타는 불에 나무를 더하는 것 같이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시비를 일으키느니라.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잠언 26장 21-22절)  가쉽과 루머는 퍼뜨리는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듣는 이들에게도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간다는 것이지요.  즉 자기의 영혼만 망가트릴 뿐 아니라 남의 심령도 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렇게 교회를 파괴하는 이들에 대해서 신앙공동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레위기는 간단명료하게 명령합니다.  "너는 네 백성 중에 돌아다니며 사람을 비방하지 말며 네 이웃의 피를 흘려 이익을 도모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19장 16절) 또 지혜자는 명령합니다.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 (잠언 20장 19절) 정확하게 번역하자면 "루머를 퍼뜨리는 자는 공동체의 자존감을 파귀하는 자니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을 피하라."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100여년이 지나기 전에 로마제국 전체에서 큰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거기에는 여러가지 정치적인 또 신학적인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 중 방아쇠 역할을 한 것은 바로 "크리스챤들은 식인종들이다"라는 루머였습니다.  성찬식에서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찢기운 바 내 몸이니라"라는 말씀이 로마제국에서 인육을 먹는다는 루머와 가쉽으로 퍼지게 되어 본격적인 박해가 일어나는 방아쇠가 된 것이지요.  사도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타락한 인간의 본성때문에 일어나는 많은 악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로마서 1장 29-30절)이라고 가쉽과 루머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악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 그가 개척하였지만 교회구실을 못하고 있는 고린도교회를 보며 "...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을까" 두려워한다라고 고린도 교인들을 견책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한 번은 제가 가쉽과 루머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더니 어떤 분이 "다 교회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 뭐가 문제가 됩니까?"라고 하시더군요... 아이구... 참... 이런 분께는 뭐라 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우리 교회를 포함한 많은 이민교회들이 어려움과 시험을 통과하여 성장해 갑니다.  죽을 것같은 시험과 환난의 과정을 통과하고 새로이 일어나는 교회는 무엇보다 가쉽과 루머가 자리잡을 수 없는 환경과 정서 그리고 문화가 기초되어야 건강히 자랄 수 있습니다.  사사건건 예수님의 사역에 딴지를 걸고 주님에 대해서 루머와 가쉽을 퍼트리면서도 회개는 커녕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자녀들이라는 교만속에서 남을 정죄하던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께서 한마디 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요한복음 8장 44절)  예수님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루머와 가쉽은 무엇이었을까요?  예수님을 세리와 창기의 친구다, 술주정뱅이다, 심지어는 바알세붑에게 잡혔다라고 하였습니다.  실상은 바리새인들도 자기들이 하는 말이 사실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루머를 퍼뜨렸을까요?  루머는 너무나 효과적으로 예수님의 사역을 무너릴 수 있는 도구가 되고 또 예수님께서 이런 루머를 들으면 마음에 상처를 입어서 당신께서 하시던 사역에 염증을 느끼고 스스로 떠나게 하기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의 모친과 동생들까지도 예수님께서 귀신들렸다함을 듣고 억지로 데리고 집에 가시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의 루머와 가쉽앞에서 우리 주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냥 그들에 대해서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너희는 거짓의 아비 마귀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선언하신 후, 상관없이 주님께서 이루시고자 하시는 사역을 계속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시지 않았다면 골고다의 언덕을 올라가실 수 있었을까요?  루머와 가쉽은 주님의 몸을 심각하게 훼손합니다.  때문에 교회는 언제든지 이런 악한 영의 꾀임과 공격을 담대히 뿌리치고 골고다의 언덕을 올라가신 주님을 따라 나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묻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혜자가 다시 대안을 제시합니다.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쟁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 (잠언 26장 20절)  누가 교회에서 루머나 가쉽을 하는 것을 듣게되면 일단 그런 행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다는 것을 사랑안에서 말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듣게 된 루머가 본인의 마음에 껄끄럽게 남는다면 당사자에게 가서 사실을 확인해야 하겠지요.  그것이 루머가 아니고 사실이라면 사랑으로 그 형제/자매의 범한 죄와 실수에 대해서 권면하고 회개의 길로 돌아오게 하면 됩니다.  그런데 확인하고 사실이 아니라면 주님앞에 회개하고 당사자에게 사과해야 할 것입니다.  루머와 가쉽이 없는 교회를 꿈꾸는 성도라면 하루하루의 삶에서 꼭 기억해야 하는 고백과 기도가 있습니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시편 19편 14절)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