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서는히브리서의 저자가걱정하는 바를말해주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혹시 주님의안식에 이르지못할자가 있을까염려한다는 것이지요.  물론하나님의 선택과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없으십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은변함이 없으십니다.  여기서히브리서 저자가말해주고 있는염려는 하나님의언약이 바뀌거나하나님의 신실하심을믿지 못해서가아닙니다.   시대에벌써 초대교회안에 교회의일원은 되었지만하나님의 은혜와섭리를 거부하는이들이 존재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의저자는 그들의심령을 염려하고있는것입니다.   은혜를거부하는 이들의특징 중에하나가 바로율법주의를 주장하고있다는 것이었고율법주의의 가장근본이 바로안식일법이었습니다.  때문에 히브리서는율법의 안식을참여하려고 노력하다가그리스도 예수의영원한 안식에들어가지 못하게되지 않을까염려하라고 말해주고있는 것이지요.   부분에 대하여광야생활 40년동안안식일을 지킨이스라엘 백성들이가나안의 안식에들어가지 못한것과 시편에서다윗왕이 고백한율법적인 안식일이아닌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사랑하는 이들만이체험할 있는 안식에대한 시를예로써 설명하고있습니다.  그리고 결론으로 11절에 예수를믿는 우리는 안식, 율법적안식이 아닌 안식, 그리스도의사랑과 은혜의안식에 들어가기를힘쓰라고 권면을 줍니다.   율법적인 안식이아니라 은혜의안식인가?  그것은 바로하나님의 말씀은살았고 활력이있어 좌우에날선 어떤검보다도 예리하여혼과 영과 관절과골수를 찔러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뜻을 판단하시기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아무리 우리가행위로 의로운척을 해도하나님의 말씀, 로고스, 하나님의, 생각, 계획이라고도 번역할 있는 하나님의말씀은 우리의중심을 살피시기때문입니다.  율법의 한계가거기입니다.  행동은 제어할지몰라도 심령의중심을 변화시키지못한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은혜는다릅니다.  행동에는 당장효과가 나타나지않더라도 심령을변화시킵니다.  때문에 은혜의삶을 살아가는이들과 율법적삶을 살아가는이들은 근본적으로다를 밖에 없는것입니다.  사랑하는 새교회가족여러분, 우리는행동을 제어하는율법의 삶을 것입니까아니면 심령을변화시키는 은혜의삶을 것입니까?  저주아래 놓인율법적 안식을위해 노동할것입니까 아니면영원한 안식을지금부터 누리고살아가는 그리스도예수 안에있는 은혜의안식을 누릴것입니까?  아침에여러분이 기도하실, 영원한 안식을이미 우리에게허락하신 주님의사랑에 온전히젖어드는 귀한은혜의 시간이되시기를 주님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