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신 일곱마디의 말씀은 주님의 말씀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말씀하신 장소가 십자가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더 큰 의미를 줍니다.

십자가는 용서의 표시이며, 죄인을 구원하시는 구원의 표시요, 십자가로 승리하신 승리의 표시이기에 십자가의 일곱마디는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첫번째 말씀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가 하는 것을 알지못함 이니이다”

세부분으로 나누어 볼때
첫번째 “아버지여”라는 ‘부름’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최악의 고통의 순간에도 아들로서의 정체성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입니까?최악의 순간, 최악의 형편에서도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기의식을 명확히 가진자가 그리스도인 입니다.

(때때로 고난과 실패, 괴로움이 계속될 때에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되심을 의심할 때도 있지요)
어떠한 형편가운데서도 “아버지여”라고 부를수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럴때 내 몫의 십자가를 감당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아무것도 할수 없는 상황에서 가장 위대한 일 -‘기도’를 하셨습니다.
아무것도 할수 없는 그때에 성도들이 할수 있는 단 한가지- ‘기도’입니다.
기도는 믿는자의 특권이며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며 선물입니다.
기도 할수 있다면 희망이 있습니다.

두번째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하는 
‘용서의 기도’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눕혔을 때에도 군병들에게,못박은 자들에게, 가시관을 씌우는 자에게 반복하여 이 용서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잘못과 실수로 당하는 고난, 고통 일지라도 계속되면 자기도 모르게 저주와 분노를 쏟아내지요.
그러나 주님은 진심으로 못박는 자들을 향하여 “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하셨습니다.

주님의 용서의 기도가 있기에 오늘 우리는 용서의 길, 구원의 길이 열리고 하나님의 축복과 값으로 살 수 없는 은혜를 입은 자들이 되었지요.

세번째 “자기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함 이니이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죄’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무지하고 맹목적인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마치 ‘불나비’가 ‘불’만 보면 맹목적으로 뛰어들듯이 ‘죄’는 맹목적인 것입니다.

그당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자들이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았다면 십자가에 달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맹목적이고 무지한 인간들을 위해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하는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드리신 것입니다. 이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하나님은 심판을 연기하고 
온 인류가 다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늘도 
십자가 위에서 고통 받으시면서까지 
나를 위해,우리를 위해 기도하신 주님을 기억합니다.
그 은혜에 감격하여 어떤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을 “아버지여”라고 부를 수 있는 
믿음의 성도님들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